2018년 6월 26일 화요일

다크사이드 용사의 이야기

  • 505 휴대용 윤슬◆xhi8jXco.Y (3268943E+6)
    2018-06-26(FIRE!) 19:09:08 <10222737>
    용사님, 만세! 용사님, 만세!!

     창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힐끗, 눈동자를 굴려 창 밖으로 본다. 소란스럽고 요란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평소에도 시끄러웠지만, 그건 분명 복작복작한 사람들의 활기찬 특유의 맛이 느껴져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는데. 무슨 일일까.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챈 것처럼 맞은 편 자리에서 어느새 딸기만 남겨두고 딸기 케이크 한 조각을 먹어치운 닉이 내게 물어왔다.

    "무슨 일인지 신경쓰여?"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입가에 가져와 기울였다.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검은 액체가 따스하게 내 입술과 혀를 적셨다.

     닉이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하고 운을 띄웠다.

    "용사가 마왕을 물리치고 복귀했다네."

    "용사?"

    "아, 반응할 줄 알았어."

     닉이 장난을 성공한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하게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닉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금 창 밖으로 돌렸다.

    "마왕을 잡으러 간 게 반년 전 아니던가?"

    "아, 속전속결로 끝냈다고 하나 봐. 용사가 이세계 출신인데, 아는 게 많았다던가? 마왕의 행동패턴을 예측했다나 뭐라나."

     닉이 어깨를 으쓱이는 게 느껴졌다.

    "성 안으로 들어온 건가?

    "아니, 아직. 소식만 먼저 전해진 거야. 곧 들어오겠지."

    "사람들은 그 용사일행을 보려고 모인 거고?"

    "그렇지."

     닉이 긍정했다. 나는 커피를 홀짝였고, 닉은 포크로 딸기를 갖고 놀았다.

    "닉."

    "응?"

    "먹을 것 갖고 장난치면 못 쓴다."

    "아아, 알았어. 먹을게. 참, 마리 같기는."

     닉이 투덜거리며 포크를 부드럽게 움직였다. 포크가 두 조각난 딸기를 동시에 꿰었다.

     나는 닉이 포크를 입가에 가져가 동시에 두 조각의 딸기를 집어넣는 것을 보며 말했다.

    "실력이 죽진 않았네."

    "오히려 늘어난 네게 듣고 싶진 않은데."

     닉이 입술을 비죽였다. 나는 거기에 뭐라고 하려다가 창 밖에서 들려온 커다란 환호성에 입을 다물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온 건가."

    "왔으니 시끄럽겠지."

     닉이 더듬더듬 손을 움직였다. 나는 그가 손을 뻗은 방향에 있는 수납함에서 냅킨을 몇 장 꺼내 건내주었다.

    "아, 고마워. 냅킨은 엄청 얇아서 말야. 기척이 잘 안 느껴진단 말이지. 움직이지도 않고."

    "헛소리. 거리가 헷갈렸을 뿐이잖아."

    "아, 들켰나."

     닉이 낄낄 웃었다. 나는 쯧 혀를 차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용사가 돌아왔다고 했었지?"

    "응? 어, 왜. 관심이 생겨?"

    "약간."

    "헤에―"

     닉이 입을 닦은 냅킨을 구겨 구석에 던져두고 질문했다.

    "용사일행 중 누구에게?"

    "용사일행에게, 라고는 안 했다만."

    "어라? 그럼 누구?"

     닉이 의문스레 물었다.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번대의 마왕과 그 수하들."

    "흐응?"

     닉이 콧소리를 내며 턱을 괴었다.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는 그 특유의 자세였다. 나는 이야기를 질질 끄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곧장 말을 이었다.

    "도대체 당대의 마왕과 그 수하들은 얼마나 약했기에 『저 따위 엉터리들』에게 당한 거지?"

    "아아, 그건가."

     닉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하긴, 이상하게 느껴지는 기척이 약하더라. 일반인의 3배에서 4배 정도? 그나마 가장 강한 기척인 애가 당대의 성녀라는 유미르나, 였어."

    "어느정도였지?"

    "일반인의 다섯하고도 반 정도?"

    "아이러니하군."

     우리 일행 중 가장 기척이 약했던 건 그 당시의 성녀였던 마리였다. 하지만 그녀의 기척이 일반인의 열 세 배정도의 기척― 그러니까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실망스러워?"

     닉이 종업원을 부르는 종을 울리며 물었다.

     종업원이 금방 달려와 그녀가 간 후에야 닉에게 대답했다.

    "많이."

    "그럴지도."

     내가 닉에게 물었다.

    "분명 네가 이번 용사는 신에게 선택받아 이계에서 불려왔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닉이 즉답했다.

    "그런데 왜 이 정도지?"

    "나도 모르지, 그건. 내가 신은 아니잖아."

    "그도 그렇군."

     나는 왼쪽 손을 들어 눈 앞에 가져왔다.

     이 왼쪽 손… 아니, 왼쪽 어깨 아래부터 전부. 아직도 위화감이 든다. 벌써 수십년이나 전에 잃은 왼팔 대신에 써 온 의수임에도.

     이건 불로불사인 탓일까, 아니면 왼팔이 잘려나간 후 쓰는 의수가 아무리 완성도가 높아도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드는 위화감일까.

     잘 모르겠다.

     분명 실생활에서는 의식할 필요가 없는, 내 의사와 실제 행동에 있는 찰나의 시간차가 너무나도 신경쓰인다.

     내 삶 중에서 가장 밀도가 높고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뜻이 많는 친구들과 함께, 찰나의 순간에 생명이 사라지는 사선을 넘나든 것이라서 그럴까?

     잘 모르겠다.

     고개를 들어 닉을 바라본다.

    "응? 왜 그래?"

     닉이 오렌지 음료에 빨대를 꽂아 마시다가 내 기척을 읽고 물었다. 그의 눈동자는, 나를 향했지만, 내 시선과 마주치치는 않았다. 그러고보니, 저 녀석도 두 눈을 잃은 게 그 때던가.

     조금,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조금, 후회되는데."

    "너가 후회? 뭐가?"

     닉이 의문스레 물었다.

    "그 때, 그냥 순순히 잡혀 감옥에 갇힌 거 말이다."

     그저 뜻이 맞는 친구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죄없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싸운 끝에 마왕을 물리쳤으나, 그 공적을 탐낸 왕실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투옥되어있던 시간들.

    "하다못해 반항이라도 할 것을."

    "아, 그건 그렇게 생각해."

     닉의 입술 사이에서 희미하게 이가는 소리가 들렸다.

     저 녀석에게도 상당히 분했던 일이겠지.

    "뭐, 그랬다간 황성이 박살났겠지만."

     하지만 금새 웃는 낯으로 돌아오는 게 저녀석답다면 저녀석다웠다.

    "황성이 아니라 황도겠지."

     나는 가볍게 그의 말을 정정해주고는 슬쩍,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음, 역시 화가 나?"

    "글쎄. 잊었다― 고는 못 하지. 그 당시의 나는 너무 무르고 순했어."

     마왕을 죽인 공로로 귀족이 되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커다란 보상이나 명예를 원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공적으로 할 생각도 없었다. 마왕을 물리치겠답시고 모아뒀지만 자중지란만 일으키는 기사단에게 그 공적을 고스란히 안겨줘도 상관 없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그저 평화였으니까.

    "덕분에 마을에서 짝사랑 했던 녀석에게 주려고 했던 순결도 잃었고."

    "마리도 잃었지. 개자식들. 마녀라고 몰아서 불태워죽이냐. 역대 최고의 성녀를. 마리의 유언만 아니었어도…"

     말꼬리를 흐린 닉이 짜증스레 빨대를 질겅질겅 씹었다. 나는 문득, 닉이 조용히 타오르는 성격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은근슬쩍 황도에 잠입해서 황제 멱 따지 마라. 그건 전전대 황제지 당대의 황제가 아냐."

    "쳇."

     닉이 혀를 찼다.

    "나도 일단 그거 줘. 마실래."

     닉이 건내준 음료를 마시며 슬쩍 창 밖을 바라보았다. 조금 조용해진 바깥이 보였다.

    "어디로 갔지, 용사들은?"

    "아마 성 안으로 초대받았겠지. 신탁이 내려온 것도 있지만, 당대의 황제는 『용사』에 묘한 동경을 갖고 있었으니 직접 만나려고 한 거 아닐까?"

    "그런가."

     뭔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처지네. 부럽다.

     …조금, 나쁜 꾀가 떠올랐다.

    "흐음, 들어가서 용사일행 죄다 작살낼까."

     아, 무의식 중에 입 밖으로 내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닉에게 곧바로 반응이 왔다.

    "야!"

     으윽, 역시 자기보곤 진정하라 해놓고 내가 그런 말을 꺼내서 그런걸까. 그리 생각하는데 닉이 한 말은 예상 외의 말이었다.

    "너 혼자 하려고 하냐!? 다른 애들도 부를테니 기다려! 마리의 유언 탓에 성질 죽이고 사는 거지, 원래라면 황도가 아니라 제국을 뒤엎었어도 수백번은 뒤엎었을 애들인 거 알잖아."

    "아."

     생각해보니 내 동료들도 나 못지않게 다혈질이었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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