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1일 목요일

데이터. 추적자. 보안관. 그리고 스페셜리스트. 단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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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21(거의 끝나감) 23:00:21 <10130160>
    시계는 영원히 멈춰버렸다. 20시 49분. 시계가 총탄에 피격 후 고장을 일으킨 시간이었다.


    그레고리는 심히 속이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그가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 있을적에 유일하게 함께 살아남은 전우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젊을적에도 자유분방하던 그녀는 언젠가부터 침착하고 조용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레고리는 그것에 조금 불안해하던 참이었다. 그건 그가 알던 전우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전우는. 좀 더 밝고. 활기차고. 자유분방하고...
    만인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이자. 사냥감의 냄새를 맡으면 흥분하여 가장 앞장서서 사냥에 나서고.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먹잇감을 덮치는 포식자 그 자체였다.
    그랬던 그녀가 조용히 여생을 보내는 모습이라니. 이빨 빠진 사자가 아닌가. 하고 그레고리는 당시 조용히 탄식했다.


    단지. 그것은 그레고리의 착각이었을 뿐이다.


    "그레고리. 목표를 마킹해서 HUD에 띄워줘."


    "나는 옛날 아이언맨 영화에 나오는 인공지능이 아니야!"


    "하지만 가능하잖아? 늘 말했듯이. 널 믿어."


    "하아...시도때도 없이 네가 부를때마다 이 일 해주는 내 생각은 해봤냐?"


    "너도 충분히 재미있어하는거 알거든. 그리고 페이 받잖아. 반띵."


    "그만! 거기까지 해. 아무리 그래도 난 힘들어 죽겠다고!"


    "하지만 일처리는 깔끔하지. 고마워."


    "으휴..."


    말을 말지. 그레고리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뒤로 쭉 누우며 기지개를 켰다. 그가 교신을 종료한 뒤의 버릇이었다. 뭐. 옛날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순전히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데는 조금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순간 자체는. 한숨 쉴 틈조차 없이 단숨에 진행되었다.


    어느날 그에게 전화 한통이 왔다. 그레고리는 테러리스트 진압 작전 전문의 다국적 특수부대. '로스트 커넥션'의 전 오퍼레이터 자격으로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던 참이었다.
    그는 당시 전문 해커이자. 팀원들을 정보적으로 서포트하는 역할이었다.


    "파이썬?"


    오래된 수화기 너머로 너무나도 오랜만에 듣는, 그의 코드네임이 전해져왔다.
    그는 기쁨에 차. 이젠 서로 다 늙었지만 여전히 그때 그 시절과 같은 이름으로 대답했다.


    "라이언. 오. 돌아왔구나."


    "급해. 네가 도와줘야 할 일이 있어."



    다짜고짜 용건부터 말하는 걸 보니. 그녀가 완전히 돌아왔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레고리는 그 사실에 잠시 이성을 흐뜨러트리곤.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자신이 도와주면 될 일을 물었다.


    그래. 그것이 실수였다.


    통신 채널 사이로 이미 왕년에 질리도록 들었던 총성과 비명소리가 다시금 질리도록 들려왔다.
    그녀가 신나는 교전을 벌이는 모양이다. 대체 그게 뭐가 즐거운걸까.


    안락하고 즐거운 노년을 기대하던 그레고리에겐 그 총성은 끔찍한 기억의 편린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런 편린이 티끝만큼도 없는 것인가. 5초간 상념에 빠져있던 그는 머리를 휙휙 내젓고는 다시 기지개를 킨 뒤 의자를 책상에 바짝 당겨 앉았다.
    집중해야할 순간이었다.


    "그레고리! 그레고리!"


    "표시했어!"


    "잘했어!"

    '탕'

    "다음은 어디냐, 요 귀염둥이들! 다 들린다!"

    '투타타타타타타...'

    "조심해!"


    "조심했어!"


    "표시했-"


    "봤어!"

    '드르르르르르륵-펑. 콰직. 쿵. 으아아아아....'

    "젠장...맙소사. 거기서 대체 몇놈이랑 싸우고있는거야?"


    "직접 확인하면 되잖아!"


    "아니-표시!"


    "확인!"


    환상의 호흡이기 그지없군. 그레고리는 심장이 멎을듯이 뛰는 통에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 편이 그의 전우에게도 좋을것이었다. 한동안 통신채널이 총성과 비명소리. 그리고 두 사람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임무 완료."


    "그 말만을 기다렸지. 자. 이제 신속히 복귀하면 되겠네?"


    "알아서 해. 난 지쳤어."


    "푹 쉬어둬. 영감님. 언제 또 연락할지 모르니까."


    "난 네가 좋을대로 불러도 되는 사람이 아니거든!"


    "집에 틀어박혀있다더니?"


    "..."


    "정보통이 너뿐인줄 알아? 좋을대로 불릴 생각인거 아니었어?"


    "...몸이 조금 아파서..."


    "그런 노인네가 아주 기운이 넘치셔. 소리도 팍팍 지르시고. 아직 안 죽었잖아."


    "됐어! 끊는다."


    "그러셔-"


    그레고리는 한숨을 푹 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확실히 요즘들어 집에 틀어박힌 참이었다.
    혹사당한 탓? 그건 아니었다. 조금 달랐다. 확실히 그레고리는 안락하고 즐거운 노후를 기대하고 준비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게 찾아왔다.

    느닷없이 암사자에게 연락이 올때면. 그는 약 1시간동안 그녀를 위해 잠시 시간을 내야만 했다.
    암사자는 마치 독사에게 남은 독기를 시험하듯, 그를 부르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아니. 어쩌면 그건 암사자가 그간 억눌렀던 포식자의 본능을 표출하는 행위였고. 독사는 운없이 그것에 걸린 것 뿐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레고리는 어쩐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늙은이의 몸에서 심장이 이렇게 뛰는건 좋지 않을텐데.
    그런데 어쩐지 그는 자꾸만 씩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과연 이 감정은 무엇일까.

    독사는 암사자에게 끌려다닐수록 점점 이전의 독기를 되찾는 것을 느꼈다.
    다 늙은 독사의 송곳니는 무뎌지고. 독은 효력을 다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틀렸다. 송곳니는 더욱 날카롭게 갈려졌고. 독은 그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고독이 되었다.
    독사는 이미 오래전의 기력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그것이 암사자가 노린 바였는지는...모르겠다.

    그레고리는 단지 흘러나오는 미소를 홀로 여과없이 씩 지어보이곤. 녹색으로 발광하는 수십대의 모니터가 놓인 방을 한번 돌아봤다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문을 닫았다.
    훌륭한 사냥꾼이라...그것은 암사자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사냥꾼을 돕는 추적자라도 그는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오히려 환영한다.

    그레고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벌집이 된 시체들이 널리고 널려 바닥을 붉은 홍수로 물들인 방에 널브러진 시계는 총탄에 직격당해 멈춰버린 참이었다. 시계는 20시 49분에 멈춰있었다.

    - 데이터. 추적자. 보안관. 그리고 스페셜리스트.

    + 단편: 멈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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