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8일 월요일

소녀의 일상

  • 242 무의미◆ENMPrSocIw (373897E+59)
    2018-06-18(모두 수고..) 15:25:15 <10062301>
    여자아이가 쓸법한 싱글 사이즈 침대는 분홍색 이불에 새하얀 매트리스와 나무 케이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배게는 소녀 취향의 프릴이 달린 연분홍색 푹신한 네모 배게였고. 그 옆에는 생일선물로 받았을법한 갈색 털 곰인형이 하나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속에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새하얀 원피스의 소녀는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비쳐온 햇살이 눈가에 이르자 조금 눈을 찡그리더니 부스스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소녀는 하루를 시작했다. 늘 평소와 같이 똑같은 일과였다.
    우선은 침대와 이불을 정리하고.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곤 기지개를 키며 스트레칭을 했다.
    깨끗한 흰색 벽지로 도배된 작은 방 안이 햇살로 가득차 먼지가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창문 옆에 놓인 책상에는 스탠드와 필기구. 그리고 쓰다 만 노트가 펼쳐져있고. 작은 선인장의 화분이 놓여있었다.
    소녀는 선인장 화분을 창가에 두곤 나풀거리는 커튼 사이로 조용히 아침 햇살이 비추는 바깥을 바라보며 잠시 사색에 잠긴 뒤. 침대 옆에 놓여있던 하늘빛 슬리퍼를 신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방 바깥으로 나갔다.

    소녀는 방에서 나와 텅 빈 거실을 걸으며 눈을 부비적거리다 하품을 하곤 식탁을 지나쳐 부엌의 냉장고를 열어 안에 있는 물건을 살펴보았다. 다만 그 안은 먹다남은 우유 한 팩을 빼면 비어있어. 소녀는 우유를 꺼내고 냉장고 문을 살짝 닫았다.
    주황색 체크무늬 식탁보가 올려진 나무 식탁에는 마른 식빵 두조각이 올려진 그릇과 오렌지 마말레이드가 있었다. 그녀는 우유를 두고 주방에서 나이프를 꺼내와. 그것으로 빵에 골고루 오렌지 마말레이드를 발라 오물오물 씹어먹었다. 빵을 하나 먹고 우유를 두 모금 마신 뒤. 그녀는 같은 방식으로 남은 빵도 먹어치우고 우유를 전부 마셔버렸다.

    식사를 마쳤으니 뒷정리를 하기 위해.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접시와 나이프를 수돗가에서 물로 대강 헹구고. 우유팩을 뜯어 물로 깨끗이 행군 뒤 한쪽에 잘 쌓아놓았다. 마말레이드는 아직 남아있으니 뚜껑을 잘 닫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식탁을 한 번 슥 훔치고 빵 부스러기를 휴지통에 버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할 일이 꽤 있는 모양으로. 그녀는 서둘러 움직이기로 했다. 우선 옷을 새하얀 긴팔 셔츠를 입고 연한 노란색 치마로 갈아입은 뒤. 여전히 눈곱이 붙은 눈을 비벼 눈곱을 떼어낸 뒤. 가벼운 하품을 하고 마른걸레를 꺼내어 바닥을 닦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 물로 살짝 적시곤. 자기 방부터 시작해서 거실을 닦기 전에 베란다의 문을 활짝 열어 신선한 공기를 잠시 쐬었다. 곧 다시 청소를 시작해. 거실.. 식당. 주방. 텅 비어있는 부모님의 방을 깨끗이 닦았다.

    부모님의 방 바닥을 깨끗이 닦고. 그녀는 잠시 허리를 펴 방 전체를 둘러보았다. 먼지는 어제 털었고. 꽃병의 물도 갈아주었고...그녀는 환기를 위해. 이 방의 창문도 활짝 열어젖혔다. 이제야 집안의 눅눅한 공기가 좀 빠진듯한 느낌에. 그녀는 잠시 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는.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부모님의 침대에 드러누워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는 두 분의 냄새를 맡으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 243 이름 없음 (6106938E+6)
    2018-06-18(모두 수고..) 15:29:50 <10062347>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는 두 분의 냄새를 맡는다는 부분에서 그리움이 느껴지네요.
    묘사력 좋아! 부러워!
  • 245 무의미◆ENMPrSocIw (7548632E+5)
    2018-06-18(모두 수고..) 15:39:41 <10062466>
    조금 환기가 된 기분에 이끌리듯 일어난 소녀는. 그러고도 잠깐 동안 좀 더 누워있을까 하는 충동에 빠졌지만 곧 그만두고 일어났다. 그녀는 방문을 나서다가 습관처럼 뒤돌아 허리를 접으며 아침 문안을 드리곤. 이내 방 문을 살짝 닫고 잠시 몸을 곧게 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아차. 한숨은 좋은 버릇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다말고 입을 합 다물고는. 다시 화장실로 돌아가 걸레를 깨끗이 빨고. 물을 두어번 쥐어짠 뒤 베란다의 창틀에 걸쳐놓고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들을 걷었다.

    그녀는 먼저 자신의 하얀 원피스와 분홍색 속옷을 접어 갠 뒤 한쪽에 치워놓고는. 어머니의 하얀 프릴이 달린 원피스. 아버지의 검푸른 정장. 어머니의 회갈색 치마. 아버지의 새하얀 와이셔츠 등등을 모두 접어 개어놓았다. 다리미는 1주일 전에 쓰다가 손을 델뻔한 경험에 아직 만지기가 두려웠다. 그녀는 곱게 접은 옷가지를 모두 각자의 옷장에 넣어놓고는. 잠시 거실의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아무래도 깜빡 존 모양인지 그녀는 자신의 고개가 반쯤 떨구어진 것과 입가에 살짝 침이 흘러내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급히 입가를 닦고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12시가 다되어가는 참이었다.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작은 생각이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활성화되어. 그녀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고는 여름용 하늘색 민소매 원피스와 노란 캔버스 모자를 꺼내어 썼다.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에 그녀는 잠시 옷장에 달린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는. 어깨에 매는 감청색 캔버스 가방을 살짝 걸치고 현관으로 나갔다.
    소녀는 쫄래쫄래 맨발로 뛰어 나가 현관에서 조그마한 갈색 샌들을 찾아 신고는. 경쾌한 발소리를 몇번 내어본 뒤 뒤돌아 집을 향해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문을 열었다.
  • 246 오르트◆BLavyNP4/s (0203393E+5)
    2018-06-18(모두 수고..) 15:40:20 <10062474>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요.
  • 247 이름 없음 (6106938E+6)
    2018-06-18(모두 수고..) 15:42:02 <10062489>
    취향저격당했다. 소설을 잘 쓰는 참치들이 왜 이리 많은고.
  • 249 무의미◆ENMPrSocIw (2438681E+6)
    2018-06-18(모두 수고..) 15:57:54 <10062658>
    하얀 페인트에. 놋쇠로 되어있는 문 손잡이를 돌리자 곧 바깥 세상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미 녹색 잔디가 점령해버린 도로를 천천히 따라걸으며. 그녀는 이따금 거리에 핀 꽃을 보면 잠시 앉아 그것을 보기도 하고. 날아다니는 나비와 향기로운 꽃내음을 실은 바람이 지나칠때면 모자를 살포시 쥔 채 그 바람이 머물고 가는 시간도 즐기며 꾸준히 걸었다.

    회색빛 담벼락은 이미 제 역할을 하지 못하듯 금이 쩍쩍 간 채 덩굴과 이끼가 자라는 터가 되어가고 있었고. 이따금 가로등을 타고 올라가 전깃줄을 휘감은 덩굴도 보이곤 했다. 그런 풍경들을 지나치며 계속 걸어가던 소녀는. 이윽고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도로를 뚫고 자라는 장소에 도달했다.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곤. 익숙한 손길로 감청색 가방을 뒤적여 작은 물병을 꺼내었다. 그녀는 생수병에 며칠간 담아놨던 수돗물이 찰랑이는 병을 기울여. 나무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는 잠시 나무를 지켜보다가 물병을 가방에 집어넣고 걸음을 옮겼다.

    10분정도 걸었을까. 그녀는 이내 골목길에서 빠져나와 상가들이 늘어선 시내에 도착했다. 이런 대낮에 불을 키고 있는 상가는 없었다. 다만 도로에는 온갖 종류의 풀들이 자라나고. 건물 외벽 곳곳에 관리가 안된 모양의 덩굴이 잔뜩 자생하고 있는 고로. 자연과 어우러진 분위기를 내기에는 제법 괜찮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우선은 이 따사로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은행 건물에 들어가기로 했다.

    조심스레 은행의 문을 당긴 그녀는. 실례합니다-라며 인사를 하곤 이미 바닥에 풀이 깔리기 시작한 은행의 텅 빈 좌석들과 갖가지.창구를 보고는 그 앞에서 순번표를 뽑아들고. 잠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가 이윽고 자신의 차례가 되자 가방을 뒤적여 통장을 꺼내곤. 창구에 놓여진 펜으로 통장의 숫자를 몇번 끄적여 수정하고 창구 안쪽으로 기어가 소량의 돈을 꺼내왔다. 기분을 낸 점심을 먹고 장을 보기에 충분한 액수임을 확인하곤. 그녀는 감사했습니다-라고 창구쪽을 향해 고개를 푸욱 숙여 인사하다가 떨어진 캔버스 모자를 황급히 집어들고 빨개진 얼굴로 건물을 나섰다.
  • 250 이름 없음 (6106938E+6)
    2018-06-18(모두 수고..) 16:00:13 <10062674>
    흠. 세상은 멸망했어도 평소답게 행동하는건가.
  • 251 오르트◆BLavyNP4/s (8335576E+5)
    2018-06-18(모두 수고..) 16:05:04 <10062735>
    인간이 없어져서 자연이 다시 지배하기 시작하는 세상이라.
  • 252 무의미◆ENMPrSocIw (4597595E+6)
    2018-06-18(모두 수고..) 16:12:20 <10062821>
    건물을 나선 그녀를 따가울 정도로 뜨거운 햇살이 반겨주는 가운데. 그녀는 서둘러 근처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길 하곤 녹색빛 상가를 돌아다니다 작은 파스타 전문점을 발견했다. 이탈리안 요리를 먹으러 가자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소녀는 조심스레 그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테이블이 그녀를 맞아주는 가운데. 소녀는 잠시 메뉴판을 둘러보곤 간단한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기로 결정했다.
    소녀는 결정하자마자한적한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모자를 잠시 벗어둔 뒤 주방으로 향했다.

    주문서에는 토마토 스파게티 한 그릇이 적혀있었다. 주문을 받은 소녀는 창고에서 찾은 하얀 에이프런을 질끈 둘러매곤. 냉장고를 뒤적여 신선한 토마토와 조금 되어보이지만 먹어도 괜찮아보이는 스파게티 면을 발견하고 그 두 재료를 꺼내왔다.
    우선은 커다란 냄비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 그녀는 잠시 요리책이라도 없나 주방을 뒤져봤지만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만두기로 했다. 그새 물이 끓자. 그녀는 부랴부랴 스파게티 면을 들이붓고는 프라이팬을 불 위에 올려놓고 토마토 두개를 올려 으깨었다. 으깬 토마토가 프라이팬을 가득 채우며 끓어오르자. 그녀는 무언가 빠진것같은 기분에 곰곰히 생각하다가 황급히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를 찾아 들이붓고 저었다.
    그렇게 3분쯤 지났을까. 어느정도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스파게티 소스에 잘 익은 면을 옮겨담고 몇분간 그것을 졸인 소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새하얀 접시를 마른 행주로 닦은 뒤 스파게티를 조심스레 따라부었다.
    잠시 후. 소녀가 여러번에 걸쳐 스파게티와 식기류. 물 등을 옮긴 뒤 세팅을 마친 테이블에 앉은 그녀는 기대되는 얼굴로 포크를 푹 꽃아 스파게티 면을 돌돌 말은 뒤. 숟가락에 올려 한입에 집어넣고 오물거렸다....

    소녀는 느끼한데다 짜고 매운 맛에 고작 세 번만에 먹기를 그만두곤. 애써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방에서 꺼낸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두고 황급히 가게를 나섰다. 
  • 253 이름 없음 (6106938E+6)
    2018-06-18(모두 수고..) 16:14:26 <10062852>
    묘사가 세밀해서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네요.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스스로 해먹는 소녀라.
  • 254 오르트◆BLavyNP4/s (8335576E+5)
    2018-06-18(모두 수고..) 16:15:34 <10062862>
    잔잔하고 조용하고, 그 와중에 소녀가 귀엽다...
  • 260 무의미◆ENMPrSocIw (4597595E+6)
    2018-06-18(모두 수고..) 16:31:05 <10063028>
    다시금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거리로 나온 소녀는. 문득 거리에 세워져있는 커다란 시계를 올려다보고는 12시 42분에서 멈춘 채 더 이상 흘러가지 않는 초침과 분침과 시침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상가로 향했다.
    만족스럽든 그렇지 않았든. 식사를 마쳤으니 이제 장을 볼 차례였기에 소녀는 익숙한 걸음으로 아는 마트를 향해 걸었다.
    익숙한 걸음을 걷는 속에, 따사로운 햇살과 바람이 그녀를 귀여워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그 관심을 적당히 받아주며. 어쩐지 상쾌해진 기분에 제자리에서 한바퀴 빙그르르 돈다거나. 통통 튀는 걸음걸이가 되어 마트로 가다가 문득 눈앞에 마주친 광경에 걸음을 멈추었다.

    작고 검은. 붉은 눈의 고양이가 그녀의 앞길에 나타나 그녀를 도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털이 적고. 마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통통하지도 않은 고양이의 시선에 어쩐지 호기심이 생긴 그녀는 고양이를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둘 간의 거리가 소녀의 기준으로 세 걸음 하고도 반 남은 시점에서. 고양이는 어쩐지 자리에 가만히 앉아 고고하게 털을 고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살포시 고양이에게 다가가 가까이서 그 생명체를 지켜볼 기회가 생긴 소녀는. 반짝이고도 호기심이 맺힌 눈으로 아스라이 고양이를 바라보다 자세를 낮추고 살짝 손을 뻗어 고양이를 만지려 했다. 그러자 공고양이가 꼬리를 살랑이며 고개를 확 소녀에게 돌린 탓에. 그녀는 잠시 손을 뒤로 뺐지만. 어쩐지 고양이가 그녀를 바라보다가 콧방귀라도 뀐 듯 고개를 움직이며 눈을 살짝 감은 탓에. 소녀는 용기를 내어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고양이의 옆구리 부분을 만지자. 부드러운 모피의 감촉이 소녀의 손을 어루만지는 가운데 고양이는 작게 갸르릉 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잔디밭 위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버렸다. 그 탓에 소녀는 손의 위치를 돌려 고양이의 등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살결과 살결이 맞닿아 전해지는 따듯한 생명의 감촉과. 부드러운 모피 속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뼈와 맥동하는 심장의 느낌에 소녀는 어쩐지 모자를 벗어 살포시 옆에 놓아두고는 자신도 자세를 바꾸어 잔디밭에 드러누워버렸다.

    드러누운채로 얼마나 고양이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었을까. 문득 고양이가 데굴 구르더니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얼굴을 비벼오는 탓에 그녀는 고양이를 품에 안으며 고양이의 목 부위를 살살 간지럽혔다. 그러자 작게 냐-하고 울음소리를 낸 고양이는 더욱 더 소녀의 품 속을 파고들어서. 소녀로써는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꼭 끌어안아야 했다.
    서로의 심장 사이로 작은 맥동이 전해져오고. 아까보다도 더욱 넓게. 팔 전체로 고양이의 체온이 전해져온다. 소녀는 따듯해진 기분과 햇살이 그녀를 부드럽고 기분좋은 열기로 감싸온 탓에. 어쩐지 슬며시 찾아온 졸음에게 금세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아버렸다.
  • 263 이름 없음 (6106938E+6)
    2018-06-18(모두 수고..) 16:36:24 <10063091>
    고양이 귀여워. 소녀도 더 귀여워!
  • 264 오르트◆BLavyNP4/s (125316E+58)
    2018-06-18(모두 수고..) 16:37:03 <10063099>
    고양이-
  • 270 무의미◆ENMPrSocIw (4597595E+6)
    2018-06-18(모두 수고..) 16:47:17 <10063226>
    ...문득 소녀는 쌀쌀한 바람이 그녀를 부드럽게 흔들어 깨우는 느낌에 눈을 떴다. 그녀의 품에 있던 고양이는 온데간데 없고. 어느새 저물어가는 붉은색 하늘이 그녀를 맞이해주었기에 소녀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더 늦기 전에 장을 보고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켜 모자를 집어들고는 한쪽 팔과 옷에 묻은 녹색 풀자락을 털고 모자를 고쳐썼다.
    그녀는 다시금 길을 나서기 전에 팔을 살짝 들어 고양이의 냄새를 맡았다...어쩐지 퀴퀴하거나 축축하고 눅눅한 냄새가 아닌. 상쾌한. 어딘가 모를 그런 냄새가 그녀를 반겨주었기에 그녀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 젓다가 다시금 길을 나섰다.

    작은 풀숲을 헤치고 도착한 마트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다가 또 모자가 떨어진것을 잽싸게 주워든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로 마트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제빵 코너에서 이젠 얼마 남지 않은 식빵을 집어들고. 야채 코너를 살짝 둘러보다가 질색하는 얼굴로 물러난 소녀는 정육 코너에서 소세지를 집어담고 딸기잼을 찾아 잠시 마트 안을 돌아다녔다.

    문득 유제품 코너를 지나치는 와중에 찍찍 소리가 들려 고개를 살짝 내밀어보니. 생쥐 일가가 낑낑대며 커다랗고 냄새나는 치즈를 끌어내리려 하는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소녀는 조심스레 몸을 내밀어. 경계하고 구석으로 도망쳐버린 생쥐 가족을 위해 치즈를 높은 선반에서 바닥으로 내려주곤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다가 선반 뒤에 숨어 생쥐 일가가 나와 치즈를 낑낑대며 끌고가는 것을 지켜보며 생긋 미소를 짓고는. 다른 물건들을 몇개 더 사러 마트를 돌아다녔다.
    이윽고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챙긴 소녀는, 잠시 물건들의 가격을 수첩에 꺼내어 전부 적은 뒤 계산하여 영수증을 만들고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은 뒤. 계산대에서 일일이 물건들을 꺼내고 다시 가방에 집어넣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그만큼의 돈을 살포시 올려놓은 뒤 마트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뒤돌아서 인사하려다, 이번엔 모자를 벗고 양 손에 든 채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다시 모자를 쓰고 가게를 나선건 덤이다.

    이제 슬슬 해가 다 저물어가는 광경에, 그녀는 발걸음을 살짝 서두르기로 했다. 그렇게 풀숲들을 부시럭거리며 헤치고 나아가다보니, 여름의 찌르르-거리는 벌레 합창단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지길래 그녀는 잠시 자리에 멈추어 그것을 감상하고는 박수를 짝짝 쳐주었다. 그 탓에 해가 완전히 져버려, 하늘은 파랗게 보일 정도로 커다란 보름달과 수백, 수천, 아니. 수억개의 별들이 점령해버렸다.
    덕택에 작은 나무가 있는 골목에 들어서서 공터를 지나던 찰나. 잠시 고개를 든 소녀는 완전히 반해버려 적당한 자리에 풀썩 앉고는 모자를 내려놓고 별과 달을 구경했다.
    데네브, 알타이르, 베가로 이루어진 여름의 대삼각형을 찾아보기도 하고. 언젠가의 기억으로 남은 별자리를 찾아보기도 하며. 그녀는 아름다운 우주의 예술작품을 마음껏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 271 오르트◆BLavyNP4/s (125316E+58)
    2018-06-18(모두 수고..) 16:48:32 <10063237>
    아레가 데네브 아르타이르 베가-
  • 272 이름 없음 (6106938E+6)
    2018-06-18(모두 수고..) 16:51:47 <10063273>
    생쥐 일가 귀여울 것 같다.
  • 277 무의미◆ENMPrSocIw (4597595E+6)
    2018-06-18(모두 수고..) 17:06:43 <10063505>
    딴짓을 하느라 너무 많이 시간을 보냈다는것을 깨달았을 즈음엔. 이미 해가 저물고도 많은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혼날까봐 아슬아슬한 기분에 사로잡히면서도 즐거웠던 하루를 회상하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흰색 페인트가 바린 문의 놋쇠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연 소녀는 현관에 들어서며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또 모자가 떨어졌다. 와중에 이미 하늘색 원피스는 이곳저곳이 녹색으로 물들어. 더이상 완전한 하늘색 원피스라고 부르기 어려운 모양새였다. 그녀는 샌들을 벗어 가지런히 정리해놓고, 모자를 주워 모자걸이에 걸어놓은 뒤 맨발로 사뿐사뿐 걸어가 가방을 냉장고 옆에 두고는 화장실에 쏙 들어갔다.

    어느새 끈적해진 몸을 씻기 위해 욕조를 마개로 막은 뒤, 따듯한 물을 틀어놓고 소녀는 세면대에서 손발을 씻은 뒤 그것의 물기도 닦지 않은 채 서둘러 장을 본것을 정리하러 쿵쿵거리며 달려가다 그만 복도에서 한바탕 미끄러지고 말았다. 욱신거리는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훔친 뒤 소녀는 장을 봐온 물건들을 세세히 정리하여 냉장고와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또 멍하니 생각에 사로잡힌 채. 잠시 냉장고를 바라보다가 문득 고통이 아닌 다른 이유로 코가 시큰해지며 흘러나온 눈물을. 소녀는 멈출 수 없어 그만 자리에 주저앉은 채 잠시 냉장고 문을 닫는것도 잊은 채로 흘러나오는 눈물과 콧물을 열심히 팔로 훔쳐냈다.
    그렇게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그제서야 화장실에 받아놓던 물이 생각난 소녀는 황급히 냉장고를 닫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이미 김이 펄펄 끓어오르며 넘치는 물을 보고 안절부절하던 소녀는 우선은 물을 잠근 뒤. 더러워진 원피스와 속옷을 빨래통에 벗어던지고 따듯한 물로 풍덩. 하고 몸을 가라앉혔다.
    따듯한 기분이 소녀의 심신을 감싸온 탓에. 작게 안도하듯 한숨을 내쉰 소녀는 눈을 감고 잠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

    소녀는 몸에 수건을 두르고 나와, 방의 서랍에서 속옷을 꺼내려 뒤지다가 문득 창문이 열려있는것을 깨닫고 황급히 그것을 닫았다. 그제서야 온 집안의 창문을 열어놓은 채 나갔던 것을 깨달은지라. 그녀는 몸에 간신히 걸쳐진 수건만을 두르고 황급히 베란다를 닫고. 부모님의 방의 창문을 닫으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방의 바닥에 고고하게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느낌의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잠시 몸이 굳었다. 창문은 굳게 닫힌 채였다. 고양이가 들어오며 닫기라도 한걸까...? 문득 소녀는 창틀부터 부모님의 침대. 그리고 바닥까지 고양이의 흙발자국이 남아있는것을 발견하곤 비명을 지르며 고양이를 들고 황급히 화장실로 뛰어갔다.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물세례를 맞는 탓에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는 고양이를 억지로 깨끗이 비누와 물로 씻기고는, 부모님 방을 청소하려다가 갑자기 몰려온 피로감에 내일 하기로 하고 속옷을 찾아 옷장을 뒤적였다. 그렇게 잠시 있다가 옷을 입고 돌아보니. 어느새 물기를 털어낸 고양이가 그녀의 침대 위에 당당히 몸을 말고 자리를 잡은 것을 보고 문득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 그녀는 고양이에게 같이 살 것을 물어보았다. 고양이는 그 말에 대답을 한건지 안한건지 그냥 고개를 떨구어버렸기에. 그녀는 침대와 이불 사이로 몸을 집어넣으며 조심조심 고양이의 옆에 자리를 잡고는 아마도 새로운 가족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눈을 감았다.

    - 소녀의 하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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